이 흑산도 여인, 외딴 섬에 귀양 온 학자에게 따뜻한 방 한 칸 내줍니다. 핏기없이 휘청대는 그를 위해 해산물을 푸지게 담아 고봉밥을 차립니다. 시원하게 터진 툇마루 너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, 밤엔 별이 은하수를 이루는 여인의 초가집은 작지만 이보다 더 안락할 수 없습니다. 이준익 감독의 흑백 사극 영화 ‘자산어보’(3월 31일 개봉)에서 학자 정약전(설경구)이 유배지 흑산도에서 만난 가거댁 얘긴데요. 정약전과 흑산도 어부 창대(변요한)의 나이‧신분 초월 우정에 관한 영화로만 알고 간 관객들이 백이면 백 반하는 캐릭터가 바로 가거댁입니다. 배우 이정은(51)이 연기했죠. 어떤 장르든 맛깔나게 소화해 ‘장르가 이정은’이랄 만한 배우지만, 이번 영화에선 특히나 사랑꾼의 매력이 진합니다.
탐관오리가 백성들 고혈을 쥐어짰던 조선 순조 1년, 배운 것 없어도 사람된 도리를 본능으로 깨친 이 현명한 여인은 한양에서 내쫓긴 외로운 학자를 넉넉히 품어주면서도 답답한 시대상을 따끔히 꼬집는 발언으로 속을 뻥뻥 뚫어주죠. “씨만 중허고 밭 귀한 줄은 모르는 거 말이여라. 씨 뿌리는 애비만 중하고 배 아파가꼬 낳고 기른 애미는 뒷전인디. 인제 자식들도 애미 귀한 줄 알아야 써.” 남존여비 사상에 돌직구 날린 이 대사, 학자 정약용이 형 정약전에게 실제 보낸 편지 속 주막 일화를 가거댁의 입을 빌어 녹여낸 것이라죠. 잘 먹이고, 편히 재우고, 아궁이 불처럼 은근히 타오르는 남도 여인 가거댁식 사랑법엔 출구가 없습니다. 가거댁 시점 ‘자산어보’는 제목을 ‘세상의 끝 흑산도에서 사랑을 외치다’라 바꿔 달아도 좋을 정도예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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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약전과 가거댁 사랑, 어디까지 실화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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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사 원문 : https://news.joins.com/article/24031542?cloc=dailymotion